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에 대한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 1. 지도에 없는 길, 터널로 이어진 시간의 틈
강릉 옥계면의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불쑥 다가온다. 어느 지도에도 뚜렷하게 표시되지 않고, 내비게이션도 안내하지 않는 이 길은 과거 영동선 열차가 지났던 폐터널로 이어진다.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는 흙길과 잡초 가득한 공간이지만, 과거 이곳은 기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던 분명한 ‘길’이었다.
터널 입구는 나무와 이끼에 가려져 처음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터널의 둥근 입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은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춰 놓은 것처럼 정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터널 안쪽은 빛이 거의 닿지 않기 때문에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 안에는 여전히 오래전의 레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벽면은 습기에 젖은 채 이끼로 뒤덮여 있다. 기차가 오가던 기억을 간직한 듯한 습기와 냄새, 그리고 고요함이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처음에는 살짝 무서울 수 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다 보면 점점 익숙해진다. 그리고 이 고요함이 오히려 평온하게 느껴진다. 세상과 단절된 이 터널은 어쩌면 나 자신과 조용히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 2. 사람 없는 풍경이 주는 위로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SNS에 해시태그가 넘쳐나는 곳도 아니다. 그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풍경 하나가,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적막이야말로 우리가 도시에서 잊고 살던 것들을 되새기게 해준다.
터널을 지나면 나오는 옛 철도 주변 도보길은 비포장 상태로 남아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때로는 흙길이 끊어져 있고,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 있는 구간도 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의 소리가 들려온다. 옥계면의 조용한 해안선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다.
길은 예상 외로 다채롭다. 벚나무, 밤나무, 야생화가 자생하는 언덕길과 오래된 철제 구조물이 어우러지며, 마치 잊힌 철길을 따라 걷는 한 편의 영화 속 장면 같다. 가끔 나무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햇살이 터널 안쪽을 비추는데, 그 순간은 설명할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은 어디를 찍어도 예쁜 뷰가 나오는 포토존은 아니다. 대신 아무도 찍지 않았기에 더 소중한 풍경이 된다. 사람 없는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은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에 가깝다.
🗺 3. 숨은 길을 걷는 여행자에게
이 폐터널길은 특별한 목적지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지금, 이 터널은 어떤 안내판도, 표지판도 없다. 그래서 더 좋다. 여행자가 직접 찾고, 발로 걸으며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길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탐험지에 가깝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보자. 바람소리,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까지… 모두 이곳을 지키는 자연의 언어다. 휴대폰 전파도 약하고, 근처엔 편의점 하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점이 이 길을 특별하게 만든다. 강릉의 유명 해변들이 관광객으로 붐비는 여름에도, 이 길은 늘 조용하다.
길을 나설 땐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자. 이곳이 계속 이렇게 남아주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가끔은 SNS에 올리지 않고 나만의 기억으로 간직하는 여행이 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남는다면, 그건 아마 좋은 여행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